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(문단 편집) ==== [[통합민주당(2008년)|통합민주당]] ==== 그야말로 [[흑역사]]로 남은 선거. 의외로 선거운동기간 중반에는 견제 심리에 힘입어 상당수 [[지역구]]들에서 한나라당을 따라잡는데 성공, 공천한 197곳 중 선거 막판 여론조사를 보면 [[종로구(선거구)|종로구]]를 비롯해 수도권 상당수 선거구들에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고, 여당 후보가 사실상 둘 이상 나온 경우도 적지 않아 예상 외 선전을 거둘 수도 있겠다는 낙관론이 나오기도 했다. 그러나 막상 선거일에는 우천으로 인해 투표율이 고작 46.8%밖에 안 나온데다, [[뉴타운]] 열풍으로 수도권에서 당 중진들이 맥을 못추며 줄줄이 [[낙선]], 말 그대로 떡실신을 당하고 만다. 결국 최다 의석이 걸린 수도권에서 후보자들이 줄줄히 낙선하여 참패하는 바람에 197석 공천 가운데 겨우 81석밖에 못 건지게 된다. 이로서 지난 총선 과반이었던 제1당 상실은 기본, 목표인 [[개헌저지선]](100석)에도 12년만에 미달하며 지선, 대선에 이은 쐐기를 박는 3연패를 당했다. 그래도 선거 초반 전망되던 50~60석보다는 많이 건져서 그나마 선전했다는 평을 받았고, 이후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의해 민주당이 야당 버프를 받으면서 재보궐선거에서 족족 이기며 89석까지 확보하면서 사실상의 [[개헌저지선]]을 지켜내긴 했다만, 개헌이 일어나지도 않았고, 일반 법안들에서는 계속 끌려다녔으니 큰 의미는 없었다. 이 81석은 역대 제1야당의석 가운데 [[새정치국민회의]](79석) 이래로 최저였다. 새정치국민회의 때는 그래도 전면적인 야권 분열 상황이었고 [[여소야대]]라 할 말은 있는 반면, 18대는 야권 분열이 미미했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. 민주당 81석에 호남 무소속 의원 6석([[이무영(1944)|이무영]], [[유성엽]], [[강운태]], [[박지원]], [[김영록]], [[이윤석]])과 이후 민주당에 복당하게 되는 강원 [[속초시·고성군·양양군]]의 [[송훈석]] 전 의원까지 합쳐 88석이었으니, [[제15대 국회의원 선거|15대 총선]]의 무소속 제외 새정치국민회의 + 민주당 = 95석에도 못 미치는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. 여기에 중도 정당인 [[창조한국당]] 3석과 진보정당인 [[민주노동당]] 5석을 넣어도 범야권 도합 96석이라 개헌저지선에 미달했다. 수도권의 경우, 당 대표였던 [[손학규]]를 서울 종로구에, 당 대선 후보였던 [[정동영]]을 서울 [[동작구 을]]에 배치하고도 떨어지는 등 유력 인사들이 줄줄이 낙선했다. 뒷심이 부족한 민주당 지지율이 선거 막판에 불어닥친 [[뉴타운]] 열풍을 맞아 흔들렸고, 이로 인해 [[경기도]]에선 [[한명숙]], [[서울특별시]]에선 [[김근태]], [[최재천(정치인)|최재천]], [[임종석]], [[이인영]] 등이 낙선했다. 심지어 [[관악구]], [[금천구]], [[구로구]], [[도봉구]] 등 서울 서남쪽과 동북쪽의 민주당 아성도 모두 무너졌다. 보통 [[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|민주당계 정당]]이 유리했던[* 2000년 총선 ~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패한 유일한 [[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|총선]]이다.] 수도권 111석 가운데 고작 26석만을 건지는 대참패를 당한 셈. 그나마 수도권 득표율은 30~40%대로 지난 대선보단 많이 올라왔고, 위성도시에서 상당수 의석을 지켜내어[* [[의정부시]]와 [[남양주시]], [[하남시]], [[시흥시]], [[오산시]] 8석을 모두 수성했으며, [[안양시]]와 [[군포시]]에서 지난 총선에 획득한 의석을 모두 수성했다.] 훗날을 도모할 수 있게 된 건 자그마한 위안이었다. 다만 권역별 내용으로 보면 여권분열에 힘입어 [[제주특별자치도]]와 [[충청북도]], [[강원도]]에서 선전했고, [[부울경]]에서도 [[제17대 국회의원 선거|지난 총선]]과 비슷한 2석을 확보하면서 호남 정당으로 쪼그라드는 최악의 경우는 피했다. 특히 무주공산이 된 [[충청북도]]와 [[제주특별자치도]]는 계속 석권하는 등[* 충북은 거진 전석을 차지했다. 유일하게 패배한 곳이 남부의 [[자유선진당]] [[이용희(1931)|이용희]] 전 의원 정도인데, 여긴 지역 기반이 하도 강해서 대책이 없었다. 이용희 전 의원은 [[동교동계]] 출신으로, 5선 의원에 76세의 나이에 당선된 최고령 의원. 군수, 지역 도의원, 군의원 등도 사실상 자기가 직접 고르고, 세습까지도 성공했다. 덕분에 충북 [[보은군·옥천군·영동군]] 지역구의 별명이 '이용희 나라'(...)인 적도 있었다. 17대 대선에서 정동영을 지원했지만, 공심위가 매몰차게 버리자 자유선진당으로 들어가 [[당선]]되었고, 이후 재탈당하여 복당하면서 차남 [[이재한(기업인)|이재한]]을 민주당에 입당시켰다.], 체면치레는 했다. 더불어서 강원도에서도 의석을 확보했는데, 정당 득표율과의 차이를 보면 후보 개개인의 개인기에 가까웠다. 더불어 [[김해시]]를 포함한 [[낙동강 벨트]]에서의 궤멸도 막았다. 한편, [[박지원]], [[이인제]], [[강운태]]와 같은 구 민주당 출신들은 이른바 "개혁 공천"에 따라 낙천되자 무소속 출마하여 대거 [[당선]]되었으며, 이후 선진당으로 간 이인제를 제외하고 대개 복당했다.[* 이인제는 [[충청남도]] [[논산시·계룡시·금산군]]에서 한나라, 민주, 친박, 자유선진당의 네 후보와 모두 싸우며 '''27.7%이란 18대 총선 최저 득표율'''로 당선되었다. 반면 [[광주광역시]] [[동구(광주광역시)|동구]]의 [[박주선]] 전 의원은 구 [[민주당(2005년)|민주당]] 출신으로, 옥중 출마에서도 늘 생환한 실력답게 88.74%의 경이로운 득표율을 올리며 18대 총선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.] [[2009년 재보궐선거]]에서 탈당한 정동영이 승리 후 이 루트를 밟았다. [[신계륜]]과 [[김영환(1955)|김영환]]도 무소속 출마에도 불구하고 20%대의 건실한 2위 득표 덕에 결국 복당 후 부활에 성공했다. [[정읍시]]의 유성엽은 [[제19대 국회의원 선거|19대 총선]]까지 무소속으로 압도적 득표로 살아남은 후 복당. 이윤석과 김영록도 같은 케이스. "공천 학살" 소리까진 안 나왔지만, [[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|탄핵 사태]]에 대한 책임을 상당히 물었으니 사실상 (합당을 주도한 인력을 제외한) 구민주계에 대한 복수였던 셈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